큰돈은 없지만 하루가 무너지지는 않는 상태가 있다.
통장은 늘 가볍지만, 삶 전체가 초라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감각.
나는 이걸 혼자서 ‘상태 좋은 가난’이라고 부른다.
부자가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무조건 아끼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건 지금 가진 조건 안에서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는 선택들의 기록이다.

1. 상태 좋은 가난은 포기가 아니라 선별에서 시작된다
상태 좋은 가난은 많은 것을 가지는 상태가 아니다.
대신 무엇을 가질지 스스로 고른 상태다.
돈이 넉넉하지 않을수록 모든 선택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소비가 점점 불편해진다.
예전에는 가격이 싼 게 가장 큰 기준이었다.
싸니까 일단 사고, 나중에 후회하고, 다시 같은 소비를 반복했다.
그때는 돈을 아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내 생활의 질을 계속 깎아내리고 있었다.
상태 좋은 가난으로 넘어오는 지점은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인정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어차피 다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만 고르자고 생각하게 된다.
이때부터 소비의 기준이 바뀐다.
싼가 비싼가가 아니라, 이게 내 하루를 덜 피곤하게 만드는지,
이게 나를 조금 더 존중하는 선택인지, 이런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과감히 줄인다.
굳이 필요 없는 약속, 의미 없이 반복되는 외식,
사고 나면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
하지만 줄인 만큼, 절대 포기하지 않는 영역이 생긴다.
잠을 편하게 자게 해주는 침구,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꺼내 입는 옷,
하루를 망치지 않게 도와주는 작은 루틴.
이런 것들은 비싸지 않아도 내 삶의 상태를 지켜준다.
상태 좋은 가난은 절약이 아니다.
선택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다.
적게 가져도 괜찮은 이유는 이미 충분히 고르고 있기 때문이다.
2. 삶의 질은 가격표보다 감각에서 유지된다
사람들은 삶의 질을 이야기할 때 종종 돈의 크기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하루를 지탱하는 건 그보다 훨씬 미세한 감각들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마시는 물의 온도,
집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공기,
하루가 끝날 무렵 몸이 얼마나 긴장돼 있는지.
이런 것들이 모여 삶의 질을 만든다.
상태 좋은 가난을 유지하려면 이 감각을 무디게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불편을 참고 넘기기 시작하면,
삶은 빠르게 거칠어진다.
그래서 일부러 챙긴다.
돈이 거의 들지 않거나, 아주 적게 드는 것들로 감각을 회복하는 선택을 한다.
집을 정리하는 시간, 햇볕이 잘 드는 시간대에 맞춰 걷는 산책,
괜히 켜놓는 음악 대신 정말 좋아하는 노래 한 곡.
이런 것들은 소비가 아니라 관리에 가깝다.
상태 좋은 가난의 소비관은 무언가를 더 얻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가진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유행에는 둔감해진다.
남들이 다 하는 소비를 따라가기보다,
나한테 잘 맞는 리듬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해진다.
비교를 줄일수록 삶의 상태는 오히려 안정된다.
이 감각을 지키다 보면 이상하게도 소비 욕구 자체가 줄어든다.
필요 없는 걸 사서 공허함을 메울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삶의 질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감각을 잃지 않는 태도로 유지된다.
상태 좋은 가난은 그걸 본능처럼 알고 있는 상태다.
3. 상태 좋은 가난은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가난해지면 사람은 쉽게 자기 자신에게 무례해진다.
어차피 이 정도밖에 안 되니까, 이 정도는 참아도 되니까.
이런 말들을 혼자에게 너무 쉽게 한다.
하지만 상태 좋은 가난은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태도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나를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이 태도는 소비에서도 드러난다.
너무 싸서 금방 망가질 걸 알면서도 사지 않는다.
입을 때마다 기분이 가라앉는 옷을 계속 입지 않는다.
먹고 나서 더 피곤해지는 선택을 습관처럼 반복하지 않는다.
이건 사치가 아니라 자기 존중에 가깝다.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세상이 나를 대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걸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상태 좋은 가난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기보다 현재를 버텨내는 기술이다.
지금의 나를 함부로 쓰지 않아야 다음 단계로 갈 힘이 남는다.
그래서 이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항상 더 나아지기를 꿈꾸지만,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돈이 없다고 해서 삶 전체를 임시 상태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늘을 괜찮게 보내는 능력.
이게 상태 좋은 가난의 핵심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하루를 만드는 것.
큰돈은 없지만,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상태.
나는 이 감각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부유함이라고 생각한다.